극동도의 중심에 위치한 산은 이즈모산이라고 한다. 이 산의 정상에 위치한 마을이 신역 중 하나인 타카마가하라다.
이즈모의 정상 부근에 항상 구름이 허리띠처럼 쳐져 있는 지역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안개의 벽>이라고 부른다. 타카마가하라 유일의 관문인 이곳은 언재나 안개에 덮혀있어 방향구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위의 야생 몬스터가 살고 있기 때문에 타카마가하라를 폐쇄된 마을로 만들었다.
베다는 홀로 안개의 벽을 달리고 있었다.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거점에서 가져온 나침반뿐이었다. 오직 그것에 의지해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쉬지 않고 달린 지 한 시간가량이 흘렀을 것이다. 베다의 체력으로는 더 이상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이제 체력의 한계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니 이미 한계를 넘겼을 지도 몰랐다.
W.H.에는 페인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W.H.초기 유저들의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이것을 유해매체로 지정하자 개발자들이 대학에서 연구하던 감각구현 프로그램을 도입해 버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로써 시각, 청각만이 존재하던 가상세계에 다섯 가지 감각 모두를 구현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페인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일정 이하의 고통(온 몸에 캡사이신 농축액을 바른 정도라고 한다)에 한하여 거의 현실에 가까운 고통을 느끼도록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고통의 수치는 그보다 낮으며 특유의 연출로 유저들이 그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의 도입에 정부 관계자들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육체적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효과를 가져온다’고 판결을 내리고 유해매체 등록을 철회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페인 시스템은 스테미너 및 기타 수치를 대신하고 있다. 지금 베다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것은 페인 시스템에 의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온 몸이 한 치수 작은 바디슈츠를 입은 것 마냥 온 몸이 죄이는 고통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태양의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어림잡아 계산해보면 오후 2시쯤 되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3시 정도라면 안개의 벽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어디선가 낮게 깔리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위협이 아닌 조용히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였다.
극동도에서 이런 소리를 내는 동물은 하나 밖에 없다.
극동도의 폭군 <이스트 아일랜드 카니스>. 하이에나보다 덩치가 큰 대형 늑대다. W.H.에서 혼자 있을 때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동물 1순위로 꼽히는 카니스의 아종이다.
일반전술교본에 따르면 카니스 사냥은 전사 3명과 궁수 2명으로 구성된 파티가 1마리를 상대하는 것이 기본 전술이다. 하지만 일반전술교본에서도 상급 공격계 마법사가 없거나 대규모 군단을 구성하지 않을 경우 카니스 무리를 만날시에는 반드시 도망칠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울음소리로 판단해 보건데 상대는 100미터 내외의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 베다는 울음소리가 난 반대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또다시 울리는 울음소리. 녀석이 동료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베다는 방향을 바꾸어 산 아래로 뛰었다. 카니스 무리를 만나면 최대한 빨리 그들의 영역에서 도망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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