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이 없는 집은 편치 않다
두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은 이 나라 최대의 종이다. 그 음색은 죽은 자는 성불하고 병자는 병이 낫게 된다고 하는 신령한 종이다.
“날 이곳에 불러낸 이유라도 있는가. 신지?”
눈을 감은 남자가 묻는다.
“그냥, 뭐 공양이라도 해 달라고나 할까.”
“공양이라…….”
“그래. 운명에 짓눌린 불쌍한 자들의 공양.”
신지는 종을 조용히 바라본다.
“운명에 짓눌린 자들의 공양이라.”
“이 세상에는 미담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야.”
신지는 종에 가까이 다가간다.
“밝을수록 그림자는 짖어진다. 아름다울수록 어두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이 세상의 균형이라는 말이로군.”
“뭐 그 또한 운명인거지…….”
1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주변에서 쇳물이 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고당목(鼓撞木) 이번엔 어떨 것 같은가?”
몸이 건장한 사내가 땀에 절어 있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묻는다.
“글쎄요. 일단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제 실력의 문제이겠죠.”
고당목이 웃는 얼굴로 말한다.
“그렇다면 실패할 리가 없을 것일세. 이 나라에서 자네만큼 실력 있는 사람도 드문 일이니까.”
사내가 웃으며 나간다.
하지만 고당목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다.
그가 이 일을 의뢰받았을 때 그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컸다. 바로 그의 스승이자 장인이 한 예언 때문이다. 신의 종을 만들 업을 지닌 자. 스승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그는 또 한 가지를 예언했다.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처음에 그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는 스승의 예언을 떠올렸다.
이 일을 의뢰한 사람은 이 나라다. 국사(國社)에 안치할 종을 만들 것. 그가 받은 의뢰. 그도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다. 몇 년이나 사람들이 매달렸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몇 명의 종장인들이 이 일로 목숨을 잃었다. 대가 바뀔 정도의 시간이 들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일. 그럼에도 나라에서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장님. 주조가 다 되었습니다.”
부하의 목소리에 상념이 끊긴다.
“그래. 이번에는 성공하길 바라야지.”
틀에 부은 쇳물이 다 식기를 기다린다. 쇳물이 다 식으면 들로 사용되는 흙을 걷어낸다. 이것으로 일차적인 완성이다.
흙을 걷어내는 작업이 끝나갈 즈음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종이 완성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국사를 주도한 만월부인이다. 그녀는 이렇게 종의 주조가 끝이 날 때마다 찾아온다.
“일차적인 작업은 끝났습니다. 소리가 잘 나는지 실험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세공을 할 수 있습니다.”
고당목은 벌써 몇 번이나 해온 설명을 한다.
“고당목 잘 들으세요. 나라에서 준비한 동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번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흙을 전부 걷어냈다. 인부들이 종을 임시 걸이에 건다. 그리고 종을 친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다. 제발 성공하기를.
종에서 맑고 은은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인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은 성공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종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자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종을 바라보았다. 그때 종이 걸이에서 떨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종은 그 자리에서 깨져버렸다. 종고리가 종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탓이다.
“이번에도 실패로군요.”
만월부인의 목소리가 냉정하게 들린다.
“…….”
죽음은 이미 각오한 바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실패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압박은 전부터 받아 온 것이었다.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전하.”
목에 땀에 전 수건을 두른 사내가 만월부인에게 아뢴다.
“무슨 말이지?”
“종은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종고리가 종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에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어야만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리고 이 나라에는 그를 능가하는 종장인은 없습니다. 그에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않으신다면 신종을 만들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좋다. 자내의 간곡한 간청으로 고당목 너에게 앞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다음은 없다. 이번에 실패한다면 너 뿐만 아니라 네 가족들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라.”
만월부인은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공방을 나갔다.
2
가루라(歌淚囉)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바람은 종의 완성. 그녀의 남편인 고당목이 평생의 숙원이자 생명을 담보로 한 종 주조 작업을 끝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온 것은 고당목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분명 그는 남편의 밑에서 일하고 있던 장인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루라가 묻자 장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 모습에 가루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묻는다.
“주조가 실패했습니다.”
장인의 말에 가루라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오……. 군제시여…….”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월부인께서 기회를 한 번 더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실패한다면 대장뿐만 아니라 당신까지 위험해 집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르신의 간청으로 만월부인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지만 이번에 실패한다면 가족까지 극형에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가루라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 어떻게 해아 합니까.”
가루라의 말에 장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루라는 오열했고 장인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글쎄요. 저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죠. 지금은 그저 대장이 주조에 집중하도록 기도 하는 것이 전부 인 것으로 보이는 군요.”
장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3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은 지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몇 번의 해가 졌고 달의 모습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녀가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장인이 떠나기 전에 한 말처럼 그저 남편의 주조가 훌륭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우.”
옹알이 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돌린 가루라의 눈에 아직 어린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고금동(鼓金童)아.”
가루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옹알이를 한다.
‘너는 절대로 신종을 보지 못할 거다.’
갑자기 떠오른 아버지의 예언에 가루라의 머리에 경종을 울린다.
‘저 녀석은 도망치려는 버릇이 있어. 그것만 해결하면 신종을 만드는 것쯤은 간단할 텐데 말이다.’
공방의 어르신이 한 말이 떠오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더군요. 더 이상 실패를 용납할 수 없다는 거죠.’
‘종의 주조는 보름달이 뜬 다음날이라고 합니다.’
가루라가 밤하늘을 바라본다. 밤하늘에 보름달이 밝게 비추고 있다.
‘그게 네 운명이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떠오른다.
‘도망갈 길이 없다면 녀석은 제대로 할 거다.’
가루라는 고금동을 안아든다.
외출복을 찾아 입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루라는 고금동을 들고 밤거리를 달린다.
가루라가 도착한 곳은 바로 종을 만드는 공방이다.
“여보. 여긴 어떻게?”
공방 안에는 고당목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나요?”
“모두들 잠을 자로 갔어요. 그런데 당신은 여기에 무슨 일이오?”
“다행이네요.”
가루라는 살포시 미소 짖는다.
“다행이라니. 당신 이곳은 여자가 출입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요?”
고당목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가루라는 천천히 쇠를 끓이고 있는 도가니로 다가간다.
“알고 있어요. 벌써 쇠를 끓이고 있군요.”
가루라는 도가니를 끓이는 불을 바라본다. 이글거리고 타오르는 잉걸불에 매료된 눈빛에 고당목은 불길함을 느꼈다.
“여보. 이건 운명이에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제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요?”
고당목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가 느낀 불길함이 확신이 되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부정한다고 해도 움직이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그만…….”
고당목은 절규한다.
“가루라. 눈물과 함께 하는 노래. 그게 제 이름이에요.”
“아…….”
“그리고 이 아이. 우리 아이. 종의 아이라는 이름을 가진 불쌍한 아이.”
그제야 고당목은 가루라의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의 아이를 바라본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절규 속에서 중얼거린다. 그 이름을 지은 자신의 스승을 향해 묻는다. 하지만 이곳에 없는 그의 스승은 대답하지 않는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 모든 것은 운명이니까.”
가루라는 미소를 지으며 용광로로 걸어간다.
막고 싶다. 막고 싶다. 반드시 막고 싶다. 저건 막아야만 한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째서…….”
고당목은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에 의문을 가진다.
‘이것이 운명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인가?’
“그럼 안녕히.”
용광로의 불길 속에서 가루라는 웃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고당목은 절규한다.
어째서냐. 어째서 막지 않은 것이냐.
원망한다. 이곳에서 가만히 있는 자신을. 국사를 일으킨 만월부인을. 그리고 자신에게 이런 운명을 지우게 한 이 세상을.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아니 깨닫고 있었다.
이것을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이유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몸속은 광기로 가득 찼다.
가족을 잃은 자의 분노. 그러나 최상의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그는 미칠 것 같은 기쁨이 있다. 이런 모순 속에서 그는 쇠를 두드렸다.
4
종이 언제 완성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인부들이 공방에 왔을 때는 이미 모든 과정이 끝난 종이 놓여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쇠를 녹였던 용광로 옆에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 종을 종루에 걸고 쳤다.
그러자 괴의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종소리를 들은 자는 미쳐 버렸다.
밤에는 짐승들이 나타나 울부짖어 사람들이 불안에 떨게 했다.
도깨비들이 궁성 안을 들락거리고 괴질이 돌았다.
만월부인이 그 종을 부수려고 한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종을 칠 때마다 들리는 아이와 여인의 비명소리. 고통에 찬 저주의 비명소리에 만월부인은 매일같이 잠을 설쳤다.
“그래서 저 종을 부수려는 것입니까?”
팔부관이 물었다.
“그래요. 저 종소리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아요. 도성 사람들은 모두 미쳐버려 온전한 사람이 아무도 없을 지경이라구요.”
“원래 기둥이 업는 집은 편치 않은 법이지.”
팔부관이 중얼거린다.
“하지만 저 종은 이 나라의 보배요. 함부로 부수어서는 안 될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이에요?”
“내가 듣기로 저 종이 만들어졌을 때 옆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고 들었소. 그 나무로 당목을 만들어 종을 치면 다신 변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팔부관은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가 좋아.”
“그렇지. 이 소리를 들으면 온갖 요사스러운 것들은 물러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영혼은 성불한다고 하니까.”
“그게 사실인가?”
“글세? 일단 그때 일어난 변고는 모두 해결 되었다고 하니까. 뭐, 아이와 부인은 종이 되고 자신은 당목이 되었으니 이 또한 운명인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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